심금을 울리누나

(슈크림씨 홈피에서 펌~)
by daradara | 2009/11/13 17:18 | | 트랙백 | 덧글(0)
김홍주 展
김홍주 展, 시공간의 빗장풀기, 10. 31~12. 2, 아르코 미술관

김홍주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분이지만,
젊은 그림그리는 작가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롤모델로써 존경받는 분들 중 한 분이라서
'선생님'으로 칭하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전시가 있으면 꼭 챙겨보게 되는 편이다.

이번 전시는 전에 보았던, 로댕 갤러리의 대표작 위주 전시와는 달리
순박한 필치의 초기작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재미있었다.

1층에 초기작들이 많이 걸려있는데,
거울 틀이나 자동차 백밀러 틀에 끼워진 판넬에,
리얼하다기 보다는 소박한 필치로 그려진 초기 그림들을 보자면,
빗속을 헤치며 운전하는 남자, 목욕탕 수증기 거울 속의 남자, 자취방 먼지낀 거울속의 남자와 같은
센치한 젊은 남자의 시선이 느껴져서 너무 재미있었다.
비슷한 거울 틀 속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해도
남자가 그려진 것과 여자가 그려진 그림에서 시선의 차이가 느껴지는데,
여자가 그려진 그림들의 경우에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그림속에서 대상의 시선이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그려진 것이 아니라
얼굴 윗부분이 잘린채로 수줍게 옷을 갈아입는 중이거나, 뒷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거나 해서
작가분이 젊은 시절에는 여자 앞에서 상당히 소심한 분이었나 싶은 잡생각이 들어 웃음을 삼키며 그림을 보게 되었다.

창문틀이나 거울 틀, 이런 장치들을 보면,
일종의 창으로 여겨지는 회화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관심을 알 수 있는데,
창으로써의 회화도 회화지만,
틀이 작가의 개인적인 몽상의 출발점으로 작용하는것 같아서 흥미롭다.

한쪽에서 보면 넝마입은 사람, 반대쪽에서는 해골, 이런 그림이나
80년대에 그려진 꽃 그림들 처럼 홀딱 깨는 초기작도 보는 입장에서 너무 즐겁고,
입체로 튀어나온 모란꽃 그림 아래 그림자 중에 어느게 진짜 그림자이고 어느게 그려진 그림자인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다.

2층에는 김홍주 선생님의 잘 알려진 대표작들 연작이 전시되어 있는데,
왁구에서 떼어내어 그림을 얇게 벽에 테커로 고정한 그림들이 많았는데,
왜 그렇게 떼어내어 전시하신건지(보관상 틀에서 떼어내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궁금했다.

2층에서는 자잘하고 꼼꼼한 작가 특유의 필치 때문에
앞으로 갔다 뒤로갔다 하면서 보다가
새필로만 그려진건지 색연필이나 연필로도 그려진 건지 궁금해서 결국
울렁울렁 매직아이 하면서도 아주 그림에 딱 붙어서 그림을 면밀히 보게 되었다.

돌을 바느질로 그림에 고정시킨 것 같은 작은 요소들도 그림에 매우 적절하고 유쾌했는데,
그림의 미덕을 매우 즐겁게 활용하시는 작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림을 보러갔을 때, 어떤 방송국에서 전시광경을 촬영하러 온 모양이었는데,
그림을 보는 관객으로 나를 촬영해도 되겠냐고 해서 절대 싫다고 대답하였다.
그림에 열중해서 딱 붙어 보는 동안 몰래 나를 카메라로 찍고 있는걸 알게되어 기겁해서 물러섰는데,
카메라를 피해다니며 전시를 보느라 마음껏 면밀히 꼼꼼히 오랫동안 그림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도대체 왜 싫다는데 굳이 카메라를 들이대는지 이해를 못하겠는 순간이었는데,
그 와중에 한 아주머님 관객분이 회색머리카락의 중년 남자분을 가리키면서 저분이 작가분이라고 매우 친절히 알려주시어 결국 관람을 포기하고 잽싸게 나왔다.
그런 종류의 친절은 어떨 때는 매우 견디기 힘들 때가 있는데, 그 날 쫌 그랬다.


어쨌든 전시보는 동안,
특히 1층 전시는 매우 즐거웠는데,
다른 선생님들도 김홍주 선생님처럼
큰 전시에서 그렇게 젊은시절의,
이후 대표작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지만 홀딱 깨는
그런 그림들을 종종 자신있게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by daradara | 2009/11/12 21:09 | 남의전시관람기 | 트랙백 | 덧글(0)
유근택 展
유근택 展, 만유사생, 11. 4~11. 29, 사비나 미술관

몇 년 전 사비나 미술관 개인전에서 흩뿌려진 자잘한 장난감들이 있는 대형 마룻바닥 그림들을 보았었는데,
그 그림들에서 시작된 작가분의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이번 사비나 미술관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세상의 시작>과<자라는 실내>연작)에서
일종의 경지에 이르렀나보다 싶을 정도로
무르익은 실내풍경들과 소용돌이치는 장난감들 씨리즈 작품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피카츄가 살짝살짝 보이는 소용돌이 그림들을 보고있자면,
두 아기들 장난감들로 하나가득인 우리집 마룻바닥이 생각난다. 
엉망진창인듯 보이지만 묘하게 놀이를 진행한 시간순서와 동선이 연상되는
바닥에 널부러진 장난감들의 반복되는 변주들을 보면서 나도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어떻게보면 지리멸렬하고 괴롭게 생각될 수도 있는 소재와 상황을 놓치지 않고 화면으로 끌고 들어와
몇 년간의 시행착오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형식을 지닌 화면을 만들어 연작으로 제시하는 힘이 놀랍다.
(육아와 가사같은 힘들고 반복되는 일상의 힘 앞에서 그것에 먹히기보다는 창조적으로 변환하는 작가의 내공이 만만치 않은데, 만약 유근택씨가 여자였다면 유근택씨의 이런 그림들이 나에게 얼마나 더 큰 격려와 위안이 되었을까 하는 잡생각도 좀 했다.)

1층 천정이 높은 공간에는 <어떤 만찬> 연작 두 점이 위 아래로 걸려있는데,
그려진 방식의 차이 때문인지 많은 사물들이 그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연작들보다 매우 허망한 정서(왜 그 화려한 불꽃놀이 끝나고 연기만 자욱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허한 정서)가 느껴진다.

<분수>연작에서는
화면 구석에 있는 달리거나, 서있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는 사람을 찾아보거나,
보일듯말듯한 피카츄풍선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하지만,
무엇보다도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분수의 물줄기들을 보면서 시간대나 바람을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다.

전반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전시공간이 구성된 느낌이고,
지하에 작은 그림들이 높게 걸리도록 제작된 작은 방은 흥미로왔다.
<어떤 만찬> 연작이 걸려있는 품새도 2층에서 보기에 난간라인과 잘 어울려서 거슬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수>연작들과, 지하의 작은그림들이 있는 방 외의 그림들은 다소 낮게 걸려있는것이 좀 거슬렸다.
재작년인가, 동산방 전시에서도 그림들이 많이 낮게 걸려있는것 같아 아쉬웠지만 전시장 천정이 낮아서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사비나 미술관에도 다소 낮게 걸려있어서 좀 의아했다. (동양화는 좀 낮게거는 관례가 있나?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사비나 미술관 전시에서는 작은 사이즈의, 목욕탕에서 씻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정말 좋았었다.
그래서 혹시 이번에 목욕탕 시리즈가 좀 더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없어서 아쉽다.
대신 액자가 되어있는 아름다운 에스키스와 드로잉이 몇 점 있다.

유근택씨의 그림들 속의 일상은 참 아름답구나. 쩝..
by daradara | 2009/11/12 19:53 | 남의전시관람기 | 트랙백 | 덧글(0)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